33세에 대치동 미래에셋타워 건물주, 야구 구단주의 놀라운 과거

2019.07.06 09:49Economy


현재 넥슨의 매출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던전앤 파이터'는 네오플의 창업주이자 전 대표 허민의 작품입니다. 성공한 사업가인 그를 표현하는 말은 의외로 '이상한', '기인(奇人)'입니다. 이런 표현은 그의 인생관 "길어야 백 년 사는 찰나의 인생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와 경영 철학에서 비롯되었는데요.


그러나 그는 한때 18번의 실패 끝에 빚이 3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실패를 번복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되기란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만큼 실패에 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돌아보게되면 성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이 사람의 추정 자산은 2019년 기준 1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가 많았다는 이 남자, 대체 어떤 인생을 산 걸까요?

 

 


허민의 특이한 이력

허민의 할아버지는 최초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고무공장을 세운 인물이며 아버지는 부산 중 고등학교 야구선수 출신입니다. 허민이 구단주와 사업가로써 꿈을 키운 데에는 이와 같은 가족력이 한몫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처럼 야구부에 들어간 그는 투수로 활동하다 어깨 부상을 입고 은퇴해야 했는데요. 부상은 그가 재수해서 입학한 서울대학교 야구동아리에서도 이어졌죠.

 

95학번으로 서울대 응용화학부에 입학한 그는 1999년 최초로 비운동권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며 언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선거본부의 명칭을 '광란의 10월'로 정하고 학생회관 앞에서 솔로 힙합댄스를 선보이는 등 전과는 차별화된 홍보를 벌여 '기인'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축제 코드를 '저항'에서 '놀이'로 바꾸는 등 총학생회장으로서 전과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요.

이후 2001년 그는 대학교에서 만난 5명의 친구와 벤처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회사의 이름은 '네오플'로, 초기에는 학과를 살려 고주파를 이용한 잠 깨우기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받는 등 제조업체로 운영되었죠. 그러나 이후 네오플은 게임회사로 변신을 꾀합니다. 이는 허민의 2000년도 경험에 의한 것이었죠. 2000년도 총학생회장 시절, 이미 그는  친구가 소개팅 시켜달라는 말에 영감을 받으면서 소개팅 게임 '캔디바'를 만들어 성공한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제조사 사장에서 게임사 사장이 되었죠.


이후 2005년 8월, '던전 앤 파이터'를 출시하며 네오플은 꽃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에 진출하며 중국 1위를 기록했고, 2009년에는 연 매출이 1000억 원을 돌파했죠. 던전앤 파이터 개발 전까지 18개의 게임이 실패하며 생긴 빚 30억 원은 던전앤 파이터의 성공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허민은 '부분유료화' 정책을 거쳐 매출을 더욱 높이는데 성공했죠. 이후 허민은 그의 나이 33살 때 네오플을 넥슨에 매각하면서 3000억 원대의 자산가로 탈바꿈했습니다. 


네오플을 매각한 그는 자유인이 되면서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입학하고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학생생활을 하던 그는 다시금 야구에 대한 꿈을 불태웠죠. 수백 통의 이메일을 1997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보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 너클볼을 익히게 되는데요.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원더홀딩스를 창업하는데요. 그리고 2010년 10월 '위메이드 프라이스'를 창업하면서 다시 경영인으로 자리 잡았죠. 2011년 고양시와 협업하여 '고양 원더스'라는 2014년 해체된 독립야구 구단을 창단하면서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1년에 40~50억 원을 들여 구단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야구사랑은 구단주에서 끝나지 않았는데요. 그는 2013년 미국 켄암리그의 락랜드볼더스 투수로 활동했었죠. 근래인 2018년에는 44세의 나이로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기까지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깨 부상으로 트라이아웃에 불참하는 등, 지명을 받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대신 히어로즈 구단의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44살에 총학생회장, 성공한 사업가, 음대생, 사업가, 구단주, 야구선수, 구단 이사회 의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너클볼처럼 그의 인생도 여기저기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갔죠. 그리고 그가 이처럼 살 수 있는 데에는 부동산의 도움이 컸습니다. 

 

 


미래에셋 빌딩으로 시작된 부동산 투자

허민 대표는 네오플 매각 이후인 2009년 3월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하는 미래에셋타워 A동과 B동을 885억 원에 매입했습니다. 해당 빌딩은 지하 5층 최고 20층, 연면적이 1만 8000㎡으로 평 단가는 1350만 원이었죠. 당시 부동산 관계자는 "지리적 요건이 좋고 우량 임차인이 임대해 공실률이 낮다"라면서 투자와 실소유 모두에 적합한 건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허민 대표는 이후에도 부동산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그는 2012년 9월 자신의 법인을 통해 미래에셋타워 인근 1743㎡ 만큼의 토지를 660억 원에 매입해 위메프 신사옥을 설립했는데요. 그의 부동산 자산은 2천억 원대로, 허민 대표는 매년 부동산 수입만 100억 원이 넘는다고 밝힌 바 있죠. 

허민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서울대 가면 좋을 거라고 해 갔더니 그렇지 않았다. 학생회장 하면 좋다고 했는데 역시 기대와 달랐다. 돈 많이 벌면 세상이 바뀐다고 배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늘 욕망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지만 그것은 행복과 별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본 그의  행보를 보면, 이제 행복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것으로 보이네요.